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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편의시설

휠체어 사용자의 시선으로 본 아파트 단지의 구조적 불편

‘주거 공간’은 있지만 ‘이동 공간’은 없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주거 형태다. 현대 도시에서 아파트는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 삶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생활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수많은 물리적 장벽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리하다고 보기 어렵고, 단지 내 보도, 출입구, 쓰레기장, 놀이터, 커뮤니티 시설까지도 이동이 쉽지 않은 구조가 많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장애인의 관점에서는 ‘불편함이 일상이 되는 구조’로 작동한다. 본 글에서는 휠체어 사용자 입장에서 실제 아파트 단지를 이용하며 느낀 구조적 불편을 중심으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주거 환경의 문제를 짚어본다.

휠체어 사용자의 시선

 단지 내 경사로와 보도의 현실

아파트 단지 내 보도는 휠체어 사용자에게 가장 자주 이용되는 길이지만,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가장 흔한 문제는 경사로의 각도다. 대부분의 단지에서는 차량 진입로와 보도를 연결하는 경사로를 설치해두고 있으나, 그 경사도가 너무 급하거나,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되지 않아 위험하다. 우천 시에는 물이 고이는 구조여서 휠체어 바퀴가 미끄러지거나 바지 밑단이 젖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보도 위에는 불법 주차된 오토바이, 자전거, 쓰레기봉투 등이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고, 휠체어의 회전 반경을 고려하지 않은 좁은 길은 방향을 바꾸는 데도 애를 먹는다.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나 정자, 운동기구가 있는 구역은 보통 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턱이나 계단으로 둘러싸여 있다. 결국 이용할 수는 있지만 ‘가까이 가기 힘든’ 구조가 되어버린다.

 출입구, 커뮤니티 시설, 생활 동선의 불균형

아파트 동 출입구는 휠체어 사용자의 일상 출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구조다. 자동문이 설치된 곳도 있지만, 아직까지 수동문이 대부분이며, 휠체어 사용자 혼자서 문을 열고 나가기는 어렵다. 문 앞에 설치된 번호 키패드가 너무 높거나, 도어락 설치 위치가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있는 사례도 있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 또한 대부분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독서실, 헬스장, 작은 도서관 같은 시설은 턱이 있거나 좁은 복도로 이어져 있어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의 크기가 작아 휠체어와 함께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며, 화재나 정전 등 비상 상황에서는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생활의 기본 요소인 쓰레기 배출도 큰 불편 중 하나다. 분리수거장이 지하주차장 구역에 있거나, 단차가 있어 휠체어로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는 독립적인 생활을 막는다. 이런 구조들은 결국 휠체어 사용자로 하여금 외출과 일상 활동을 줄이게 만들고, 주거 공간에서조차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파트 단지는 단지 건물과 동선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매일 반복되는 공간이다. 휠체어 사용자에게 현재의 아파트 구조는 ‘살 수는 있지만, 제대로 살기 힘든 공간’으로 남아 있다. 주거의 질은 면적이나 위치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물리적인 진입 가능성뿐 아니라, 실제 생활이 가능하고 편안한 구조인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아파트 설계는 모든 사용자의 이동성과 독립성을 중심에 두어야 하며, 이미 지어진 아파트 역시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위한 설계는 결국 모두를 위한 설계가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진짜 ‘살기 좋은 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구조를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일상의 작은 불편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편리한 주거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