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안내판은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무용지물일지도 모른다
공공건물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누구’에는 시각장애인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관공서, 도서관, 복지센터, 병원 등에는 점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문 옆, 벽면, 엘리베이터 내부 등 다양한 위치에 점자 안내가 붙어 있지만, 과연 이 점자 안내판은 실제로 시각장애인의 이동과 정보 접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을까? 점자 안내판은 단순히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공공건물에 설치된 점자 안내판의 현실을 점검해 보고, 그 실효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점자 안내판의 위치, 높이, 내용 모두가 문제
점자 안내판이 설치된 공공건물을 둘러보면 대부분 일정한 형식에 따라 부착되어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읽어야 하는 점자 특성상, 안내판의 위치와 설치 각도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안내판이 너무 높거나 벽면과 일직선으로 부착되어 손으로 만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 화장실 출입문 옆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붙어 있는 점자 안내는 손이 자연스럽게 닿지 않는 위치에 있어 활용이 어렵다.
또한 안내판의 내용 자체도 문제다. 일부 건물에서는 점자가 부정확하거나, 띄어쓰기와 철자가 잘못되어 있어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렵다. 점자와 함께 쓰여 있는 글자 크기나 촉각지도도 부실한 경우가 많다. 복잡한 건물의 경우,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방향 표시가 없거나, 건물 구조가 점자로 충분히 표현되지 않아 실제로는 전혀 길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인 경우도 존재한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이런 안내판은 단지 ‘벽에 붙어 있는 금속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된다.
점자 안내판은 있지만 사용자 고려는 없다
점자 안내판이 법적으로 설치 의무화되면서,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형식적으로 이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설치 이후의 관리와 실사용자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점자 안내판이 먼지로 뒤덮여 있거나, 안내 내용이 건물 내부 구조 변경 후에도 갱신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심지어 리모델링을 하면서 점자 안내판이 임시 폐쇄되거나 아예 사라진 사례도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건물에 들어섰을 때, 안내판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점자 안내판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려주는 음성 안내나 점자 유도 블록의 연결이 되지 않아 처음부터 찾기가 어렵다. 안내를 요청할 수 있는 직원이 상시 배치되어 있지 않거나, 점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시각장애인은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의존하거나 건물 이용을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점자 안내판은 단순한 설치물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설치’에서 ‘사용’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
공공건물의 점자 안내판은 단지 법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각장애인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위치에, 정확한 내용으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점자 안내판은 종이책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는’ 정보다. 그러므로 설치된 상태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실사용자 입장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공공건물은 점자 안내판을 단지 벽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눈과 손이 되는 정보 시스템으로 인식해야 한다. 배려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할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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